불가리아 릴라수도원/릴라산
6월13일 불가리아 릴라수도원으로 먼저 향했다.. 불가리아에서 릴라수도원을 먼저 구경하고 나서 릴라산이 가까운 사파레바 바냐 숙소로 가서 일박을 한후 아침일찍 식사하고 도시락을 싼후 릴라산을 오를 심산이다..
릴라산에서 하산하면 곧바로 소피아 숙소로 돌아가서 간단히 쇼핑을 한후 취침에 든다. 이제 그후 세르비아 에서 일박을 한후 다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숙소로 가면 2틀밤을 자고 바로 한국행이다..
릴라수도원 입구..
릴라수도원은 입장료가 없었는데 파킹비로 3유로인가 뜯어갔다.
릴라수도원.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은 10세기경 동방정교회(Orthodox Church)의 성자 반열에 오른 운둔자로 알려진 릴라의 성요한(St John)이 설립했다. 수도원을 비롯하여 성 요한의 금욕적인 삶의 은둔처·무덤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으며, 중세 불가리아의 정신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초 화재로 훼손되어, 1834년~1862년에 재건축되었다. 불가리아 르네상스(18, 19세기) 특유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슬라브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것으로, 불가리아에서 가장 문화적·역사적이며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유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10세기 역사적 혼란기 속에서, 릴라 수도원은 중세 시대(11~14세기) 동안 동방정교회 세계의 강한 정신과 예술적인 영향의 중심지였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체제(1400~1878) 아래 수도원은 오스만 제국의 모든 그리스도 국가들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수도원은 불가리아 인의 창조적 우수성을 뽐내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건축물과 프레스코 화 등이 대표적이다. 건축 양식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11~19세기) 역사적 기념물로서 보존되어 왔다. 기본적인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발칸 민족 건축 기술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그 정도로 이 건물은 발칸 지역의 건축 및 미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릴라 수도원은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불가리아의 국가적 회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정신적·문화적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다. 화재로 인해 수도원, 새로운 성당, 여러 구조물 등의 재건축 작업이 필요했다. 이 유산은 위치, 내용, 개념, 용법, 기능, 전통과 유적지의 정신 등 장소에 대한 유산의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릴라 수도원은 불가리아 슬라브족의 가장 오래되고 활발한 종교 중심지이다. 이곳은 우선, 특유의 건축과 벽화가 서로 조화롭게 융화되어 있는 매우 훌륭한 예술복합체라는 점이다. 그밖에도 릴라 수도원은 수세기 동안 문학·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확산시켜온 슬라브 종교를 발전·보존해온 곳이다. 이곳은 지속적으로 터키의 위협 아래 있었지만 슬라브 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이 되어온 곳이다.
흐렐류(Stefan Hrelyu)라는 이름을 가진 지방 봉건왕의 기부 덕택에, 최초의 유적지로부터 몇 ㎞ 떨어진 현재의 자리에 수도원을 재건할 수 있었다. 새로운 건물은 15세기에 완성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끊임없이 수도원을 습격하고 파괴하였지만 수도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국가적 정체성의 성채 역할을 수행했다. 수도원은 성인의 유해가 옮겨진 1469년 후 발칸 지역 전체의 순례지가 되었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 불가리아 르네상스의 최고 세력 집단이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이 기능은 계속되었다. 이 기간은 수도원의 박물관에 보관된 화려한 십자가에 의해 증명되어 있으며, 이 움직임의 주도적인 인물인 수도사 라파엘(Raphael)이 그린 100개 이상의 성서 장면들로 장식되었다. 흐렐류(Hrelyu) 탑을 제외한 현존 건축물은 19세기 건축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넓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 수도원은 불규칙한 사각형 모양이며,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22개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 수도원 한 모퉁이에는 4개의 예배당, 대수도원 원장실, 부엌, 도서관, 그리고 기증자실, 약 300칸에 이르는 독방 등의 복합 건물군이 있다.
수도원 단지는 3층 내지 4층 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안뜰이 있으며, 바람이 잘 통하는 로지아(loggias)를 형성하고 파사드(facade)로 통합되는 석주가 세워진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흰색, 빨간색, 그리고 검정색의 회반죽 띠는 벽돌 사이에 색채의 상호작용을 보여 줌으로써 더욱 활기 있게 보인다. 높이가 23m인 흐렐류 탑의 5층은 그리스도의 변용(Transfiguration)에 바치는 예배당으로 되어 있으며, 14세기 후반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예배당 중앙부에는 릴라의 성요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19세기경 건설된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성모 승천 가톨릭 성당(Cathedral of Our Lady of the Assumption)은 1842년 테살로니카(Thessalonica)의 아타나시오스 탈라두로(Athanasios Taladuro)에 의해 설계되었다. 벽에는 성화가 훌륭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프레스코 화도 풍부하게 그려져 있다. 수도원에 보관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건축물에 국한되지 않으며 불가리아 문명에서 아주 귀중한 증거를 제시하는 예술 작품들과 문서들로서 의미가 크며 그것들은 주로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6월14일 수요일
싸파레바 바냐 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새벽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릴라산으로 왔다..
릴라산은 일곱개의 호수로 이름난 불가리아의 명산이라 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릴라산 초입으로 가는 방법은 트레킹 말고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한가지는 스키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고
또한가지 방법은 4륜구동 찝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4륜구동은 보통 7-8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가격은 인당 약 20레바 정도로 스키 리프트값과 거의 같은데 , 정말 이 4륜구동은 한번쯤 경험해야하는 Must-Do 라고 생각된다.
강추에 강추 를 한다..!!!!
상상도 못할 거친 로드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짜릿한 스릴은 정말 태어나서 첨으로 느껴 보았던 멋진 경험이되었다.
경치가 좋은곳에서는 이렇게 가끔 차를 멈추어 준다..
까~~악...
정말 스릴만점이다..엉덩이가 위아래로 춤을 춘다..
엉덩이가 아파도 정말 꿀잼이다..
영업을 하는지 안하는지 궁금한 호텔..
여기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실수 있다고 들었다..
사륜구동 찝차.. 바퀴도 일반 찝차보다 훨크고 힘도 장사다..
여기가면 꼭 한번 타보자..
스키 리프트는 이날 비가 내리자 운행이 중지 되었는데 나중에 내려와 보니 강한 빗줄기 속에서도 운행을 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쨍하게 해가 나와주었는데 이날만큼은 정말 날씨가 지랄 같았음..
호수이름.. 눈물 ,눈, 신장, 쌍둥이, 세잎의, 물고기,가장낮은
이렇게 7가지 호수가 있는데 그중 3개가 먼저 보인다...
우찌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지 속내의 까지 몽땅 다 젖어온다..
가끔 비가 멈춰주어 사진도 담아 본다..
그런데 그러다가 중반에 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분다...ㅠ.,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부랴 부랴 철수를 했다.
철수하면서 빗줄기는 더 굵어 지고 바람은 더 거세진다...하흑..
비록 날씨가 궂어서 제대로 트래킹은 못했지만, 불가리아의 릴라산은 영원히 잊지못할 풍경과 추억을 내게 선물 하였다.
이제 소피아로 내려가 간단히 쇼핑하고 저녁식사를 마친후 내일 마지막 여정을 소화해야한다..